Q. 극사실주의 고양이 아티스트 사토 작가님, 안녕하세요? 짧은 소개를 달아보았습니다만 《만화다반사》를 통해 작가님을 처음 만나는 독자분들께 자기 소개와 함께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토’라는 필명으로 만화를 그리고 있는 만화가입니다. 한국에서 일본의 출판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Q. 2019년 고단샤의 만화상인 ‘치바 테츠야상’에 입선, 그 이후 같은 출판사에서 『데드미트 패러독스』를 연재하셨습니다. 치바 테츠야상은 한국 작가님들도 받은 전적이 있고 와야마 야마 작가가 입선한 공모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국이 아닌 일본, 그리고 일본 중에서도 고단샤라는 출판사를 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처음부터 본인과 어울릴 출판사를 목표로 하신 건지, 많은 출판사에 투고했다가 고단샤로부터 낙점을 받은 건지 궁금하네요.
제가 출판만화를 그리기로 다짐했을 당시에는 웹툰이 대세였고 한국에서 출판만화 쪽은 거의 독립 출판만화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것 같습니다. 제 성향을 고려해 고단샤라는 출판사를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고, 제가 응모한 치바 테츠야상이 고단샤가 주관하는 상이었을 뿐이에요. 그때 제가 아는 상이 데즈카 오사무상과 치바 테츠야상, 두 개였거든요. 그리고 물구나무서서 봐도 ‘난 점프 쪽은 아냐’라고 생각을 해서 치바 테츠야상에 응모하기를 선택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Q. ‘점프스럽다’. 여기서 말하는 ‘점프’는 마찬가지로 일본 3대 출판사 중 하나인 슈에이샤를 대표하는 만화 잡지 《주간 소년 점프》를 가리킵니다. ‘원나블’을 비롯해 『주술회전』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등의 유명한 만화들이 연재되고 있고요. 대략적인 느낌은 옵니다만 작가님이 생각하는 ‘점프 쪽’이라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소년만화, 그리고 ‘캐릭터’ 중심이요. 작품 속 캐릭터를 탄탄히 만들어서 이후에는 애니메이션은 물론, 캐릭터별로 굿즈를 쭉쭉 뽑아내는 느낌이랄까요. 그게 싫은 건 아니에요. 캐릭터를 중심으로 만화를 만드는 것이 저의 영역이자 특기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캐릭터엔 큰 관심이 없고 이야기, 플롯 중심의 만화를 그립니다.
Q. 그렇다면 ‘고단샤스럽다’라는 느낌도 있나요? 얼마 전에 요시나가 후미 작가님의 인터뷰집을 편집하면서 요시나가 작가님이 생각하는 ‘하쿠센샤스럽다’를 읽고 인상 깊었거든요.
《주간 소년 점프》가 워낙에 대표 잡지다보니 슈에이샤에 대해선 말할 수 있었는데 고단샤는 글쎄요. 『진격의 거인』이 연재된 《소년 매거진》만 해도 너무 달라서요.
Q. 하긴, 말씀하신 《소년 매거진》, 『어제 뭐 먹었어?』의 연재지 《모닝》, 『아오노군에게 닿고 싶지만 죽고 싶어』의 연재지 《월간 애프터눈》만 해도 색깔이 너무 다르네요.
그래도 고단샤는 ‘점잖다’는 느낌입니다. 치바 테츠야상 말고 고단샤에 ‘사계상’이라는 공모전이 하나 더 있는데 두 공모전에 입선한 만화들을 보면 그런 인상을 받습니다.
Q. ‘정통’스럽죠. 만화 그 자체 같은.
맞습니다. 슈에이샤는 혈기, 젊음이 가득하고요.
Q. SNS와 포스타입 등을 통해서도 이야기하신 적이 있지만 일본 출판사에 투고부터 연재까지의 과정을 말씀해주시겠어요?
75회 치바 테츠야상에 입선한 후 일본 출판사의 편집자님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바로 연재 준비를 하자고 했는데 저는 연재를 할 자신이 없었어요. 체력도 멘탈도 상황도 연재를 할 상황이 아니었고 연재에 관심도 크게 없었거든요. 그랬더니 편집자님이 ‘그렇다면 장편의 첫 화를 가정한 단편을 그리자!’라고 우회한 제안을 해주셔서 그렇게 정한 뒤 단편 작업을 했습니다. 일단은 단편이지만 그것이 이어지면 장편이 되는, 연작 느낌으로요. 그러던 중에 고단샤의 잡지 《모닝》에서 신인 만화가를 대상으로 한 사내 공모전을 열어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 공모전에서 운이 좋게 독자 앙케이트(인기투표) 1위를 했고, 그때 좋은 성적을 거둔 단편을 고쳐서 지금의 『데드미트 패러독스』를 만들었습니다.
Q. 공모전 입선, 단편 발표, 장편 연재. 일본에서 만화가가 데뷔하는 전형적인 루트입니다…만, 압축적인 과정과 설명 속에 사연들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우여곡절이 분명 있으셨을 것 같은데.
공모전에서 1위를 해도 ‘연재 회의’에 통과를 해야 합니다. 이 연재 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이 한국과는 조금 다르고,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웹툰이든 출판만화든) 담당자가 연재를 희망하는 작품의 프레젠테이션을 한 후 큰 문제의 소지나 별일이 없는 한 연재를 확정하는데, 연재 회의라는 것이 정말로 당락을 좌우하는 게 아니고 일종의 ‘이런 만화를 기획해 연재하겠다’라는 발표와 보고인 듯합니다. 일본은 조금 다릅니다. 편집장과 같이 ‘윗선’이라 할 만한 분들끼리 모여 당락을 결정합니다. 만화 『바쿠만』(두 소년 주인공이 글과 그림 작가로 한 조를 이루어 데뷔부터 연재하기까지를 그린 만화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출판사는 슈에이샤의 사정과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다)과 정말 유사합니다. 저의 담당 편집자님도 늘 이 연재 회의의 결과를 기다릴 때마다 조마조마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연재 회의에 통과되기까지 도입부, 그러니까 1화부터 3화까지의 이야기를 7번 정도 고쳤습니다.
Q. 그 정도로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 다소 놀랍습니다. 일본 출판사나 일본 편집자들의 특징이 있나요?
외국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솔직히 말해서 이상합니다. 편집자님께서 새벽 3시에도 답장을 하시고, 오후 12시에도 답장을 하시고… 언제 주무시는 걸까요? 작가는 그렇다 쳐도 편집자는 직장인인데요. 제가 고단샤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도 사무실이 환했습니다. 아무튼 보수적이고 상하관계가 뚜렷하며 수직적이라는 것은 분명히 느꼈습니다. 아직 저도 연재를 한 번밖에 겪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Q. 7번이나 수정을 하려면 힘드셨을 텐데 그럼에도 고칠수록 개선되고 있음을 충분히 느꼈다는 말씀이신 거죠?
네, 개선되는 것이 보이기에 계속했습니다. 더 나은 만화를 그리고 싶었고 피드백과 티칭을 받으며 취할 부분은 확실하게 취했습니다. 한국에서 일본 출판사 투고와 데뷔를 염두에 두고 계신 분들 중 피드백에 민감한 분들은 이 부분에서 어쩌면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Q. 창작에 어느 정도 ‘개입’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인가요?
네,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일본 출판사와 일하며 실질적으로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저는 괜찮았습니다만 다른 작가님들이 흔히 토로하신 것은 ‘메일 답장이 지나치게 느리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빨리하는 성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떤 결과든 확답을 빠르게 받아야 다른 출판사를 알아보든가 다른 일을 알아볼 수가 있는데, 기약 없는 기다림이 지속되니 지치시는 작가님들이 많습니다. 본인의 담당 편집자님이 빠르게 답장하시는 분이라 해도 한번 고배를 마시면 다음 연재 회의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사안이 결정되고 전달되는 과정까지가 모두 무척 느립니다. 영 아닌 것 같다 싶으면 에둘러 거절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말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과도 일을 해봤는데 일본 출판사는 미국과 유럽권에 비하면 또 빠른 편이긴 합니다…
Q. 보통 ‘일본’이라는 나라라고 하면 신중함과 보수적인 성향이 떠오르기는 하지요. 한국과도 분명 다른 점이 있겠죠? 개인적으로 작년에 슈에이샤에서 시원하게 공개한 원고료를 보고 놀랐습니다. 《주간 소년 점프》 연재 시, 신인 기준 흑백은 장당 18,700엔, 컬러 원고는 28,050엔.
슈에이샤, 특히 《주간 소년 점프》는 대표 잡지이니 고료가 높은 편입니다. 타 출판사의 원고료는 신인 기준 장당 10,000엔입니다. 조금 더 작은 출판사는 장당 9,000엔에서 8,000엔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세금을 제하고 엔저 영향까지 받으면 한국 출판사와 장당 고료는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Q. 그렇군요. 원고료 말고 시스템이나 업무적으로 비교해본다면요?
한국 출판사는 작가 개인의 능력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작가 능력에 올인하고, 솔직히 말해 원고에 대한 피드백도 누구나 할 수 있는 피드백입니다. 일본 출판사는 작가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히트작 작가들을 키워낸 노하우와 시스템으로 티칭과 피드백이 함께합니다. 이를테면 제 담당 편집자님의 선배 편집자님이 오토모 가쓰히로(만화 『AKIRA』의 작가)의 담당 편집자셨는데, 그런 식으로 선례와 히트작의 경험을 가진 선배들의 노하우가 제 담당 편집자님에게 내려오고, 저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은 빠르게 작품을 론칭시켜 연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일본은 고심하고 공을 들여 히트작 하나를 제대로 뽑겠다는 분위기입니다. 덕분에 힘들긴 해도 실력이 쭉쭉 느는 느낌이었습니다.
Q. 일본에서 반기는 만화의 특징이 있나요? ‘한국 만화’와는 다른 점이라든지요.
잘 모르겠습니다. 읽는 방향이 다르고 한국보다 수위가 높다는 정도? 편집자님도 아시겠지만 나라로 딱 나누기에는 애매한 영역들이 많아서요.
Q. 전에 한국 작가들의 일본 진출을 독려하는 글을 읽었는데, 한국 작가들은 더이상 그림체에 연연하지 말라고, 이미 너무나 충분히 잘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봤어요. 꽤 오래전에 작성된 글이었는데, 작가님은 그림체의 중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림체는 어느 정도 드로잉이 되고 가독성이 괜찮으면 되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 작가님들이 그림을 못 그리시진 않습니다. 그림체 자체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에 맞는 그림체의 개발에는 충분히 신경쓰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Q. 일본 출판사 투고 및 활동을 목표로 하는 분들께 조언이나 유의할 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일전에 청강대학교에 간 적이 있는데 삼분의 일의 학생분들께서 일본 진출을 목표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어떤 편집자도 한국인이라고 차별하지 않습니다. 답 메일이 오지 않거나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면 그냥 ‘내 만화가 구리군’ 하고 더 연습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일본 출판사 공모전에는 응모 시 나이를 기입하라 하는데, 저 역시 공모전 입선 당시 ‘22살’이라는 나이가 엄청나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일본은 참… ‘천재’를 좋아해요.
Q. 일본에서 늘 대서특필되는 칭호죠. ‘천재 등장’ ‘최연소 수상’. 저도 일본 만화 잡지 편집장의 인터뷰를 본 적 있는데, 솔직하게 나이를 언급하며 젊은 신인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령으로 차별하는 건 아니지만 참신성과 체력 면에서 나이를 무척 중시한다고 하더군요.
네, 같은 조건이라면 나이 어린 신인의 잠재성과 체력을 높게 삽니다. 또한 어려야 작품을 같이 만들어감에 있어 다루기도 쉽고요. 종종 지망생분들 사이에서 “나이 때문에 공모전에서 ‘컷’ 당할 일이 있냐, 만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일본 편집자들에게 나이는 확실히 중요히 여겨지는 부분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나이가 공모전 입선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고, '연재'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치바 테츠야상을 탄 한국인이 저 포함 셋인데 그중 한 분은 40대 때 입선하셨습니다. 실력이 충분하다면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 같습니다. 다만 애매할 때는 나이를 고려한다는 의미입니다.
Q. 솔직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한국의 만화 출판사에서 일하는 제게도 무척 귀한 이야기였습니다. 끝으로 작가님은 앞으로 어떤 활동 계획이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은 단편을 모아 단편집을 내려고 합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자유롭게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요. 지금처럼 고양이 그림을 잔뜩 그리면서 만화를 계속 그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