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한국의 팬들께, 그리고 인터뷰로 처음 우오토 작가님을 알게 된 독자분들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우오토魚豊라고 합니다. 만화가입니다. 좋은 기회로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제 작품을 한국의 독자분들께서 읽어주신다니 영광스러운 마음입니다.
Q. (한국에서는 24년 5월 『지.』의 완결권이 출간되지만) 일본에서는 『지.』가 완결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습니다. 올해 애니메이션 방영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는데, 원작자로서 한발 앞서 맛보기도 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어떤 심경인가요?
A. 2년 전에 완결된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만들어진다니, 무척 기뻐요. ‘그림이 움직인다’는 것에는 만화와는 또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이 훌륭합니다. (주제가도, OST도요.) 이것도 애니메이션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기에 향후 독자분들께서도 꼭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Q. 일본 잡지 「POPEYE」에 실린 작가님의 서재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도 창작을 위한 자료 조사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서재였는데요. 만화를 그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작업 루틴, 취미 등 작가님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함께 주목받고 있는 신인만화가들도 많은데, 혹시 평소에 친하게 교류하는 동료 작가도 있나요?
A. 일과 분리된 취미가 없어서 (그게 제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매일 책을 읽거나, 영화를 틀어놓고 시간을 보냅니다. 소극적인 성격이라 다른 만화가분들과 사적으로 만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네요.
Q. 첫 투고작부터 한동안은 개그만화를 연달아 그리셨지요. 『지.』의 진중한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처음에는 놀라웠지만 이내 작품 속 인물들의 숨막히는 설전 곳곳에서도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는 점을 떠올리고 납득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창작 경험이 지금의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대사라면 대사, 캐릭터라면 캐릭터 등 작가님이 만화 창작에 있어 중요시 여기는 점이나 스스로의 ‘무기(장점)’라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과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돌이켜보면 개그만화를 그리던 시절에도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아무래도 좋은 일에 본인들만 진지하게 임한다’는 상황을 유머로써 다루곤 했습니다. 그것이 진지하게 발전한 끝에 『100미터.』 『지.』 『어서 오세요! FACT에』(국내 미정발)라는 작품이 나온 것 같습니다. 본질적으로는 같은 주제를 계속해서 그리고 있는 셈이죠.
만화 창작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문제 제기의 방향성과 무게 부여’입니다. 그 문제가 자신이나 타인, 나아가 사회에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가. 이를 통해 어떤 답에 다가가려 하고 있는가. 그런 것들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Q. 처음 『지.』 1권의 책장을 닫았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1부의 주인공 ‘라파우’는 신학도가 되기를 꿈꿨지만 우연한 계기로 지동설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결국 죽음으로 자신의 신념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주인공이라 한치 의심 없이 믿었던 ‘라파우’의 죽음으로부터 비로소 『지.』 라는 대서사시는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만화의 핵심적 사상이자 주장을 하는 인물을 바로 죽이고 시작하는 만화라니! 이런 전개를 떠올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어떤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한 명의 천재가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실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장소, 다양한 시간축에서 다양한 일을 한다. 그것이 전부 연결된 끝에 변혁이 일어난다고 믿어서요. 이와 같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협업’이 인류의 훌륭한 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주인공 한 명이 밀어붙여 시대를 움직이는 것보다는 복수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지금과 같은 구성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Q. (※완결 권 스포일러) 1부의 '라파우', 2부의 '오크지'와 '바데니', 3부의 '욜렌타', 4부의 '드라카', 그리고 마지막 장의 '알베르트'까지. 『지.』에서는 각 장마다 저마다 다른 신념을 품고 지동설을 추종하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작품을 그리며 가장 마음이 동했던 인물이 있나요? 많은 작가분들이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인물이 멋대로 움직인다’고도 하던데요, 혹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인물도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제 경우, 캐릭터가 혼자서 움직이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야기를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움직이기 위해 캐릭터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그래도 굳이 꼽자면 이야기의 초장과 종장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 라파우일까요. 왜냐면 ‘라파우’라는 고유명사가 현실을 떠나 ‘개념’으로써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초장의 라파우가 가지는 ‘영웅성’을 파괴하는 것이 종장에 등장하는 라파우인데, 그 둘은 다른 사람인 동시에 같은 사람이기에 하나의 ’이름‘ 아래 서로 다른 가치관이 양립하고 있다는 식의 연출이 가능했습니다. 만화 나름의 독특한 리얼리티를 추구할 수 있었던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Q. 『지.』라는 제목에는 여러 함의가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의 골자는 ‘지동설’이지만, 지식에 대한 열망, 폭력의 필연성과 부조리함 등 이야기가 전개되며 제목에 담긴 의미 역시 확장되어갑니다. 이와 같은 서사 구조는 연재 초기부터 구상하셨나요? 그리다보니 하고 싶어진 이야기가 생겨나기도 했는지요.
A.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추가된 설정은 딱히 없네요. 하지만 라파우 편의 콘티 2화는 거의 폐기하다시피 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재미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Q. (※완결 권 스포일러) 이 만화에는 인상적인 대사와 장면이 수없이 등장하지만, 마지막 권을 편집하며 인상에 남았던 건 노바크의 최후였습니다. “지금, 때마침 여기에서 살았던 모든 이는 설사 서로 죽일 만큼 미워했더라도 같은 시대를 만든 동료라는 기분이 듭니다. (84쪽)” 『지.』에서는 오크지와 바데니, 욜렌타와 드라카 등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반목한 끝에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합니다. 노바크처럼 결국 죽을 때까지 그들과 화합하지 못한 인물도 있고요. 분열이 심화되어만 가는 현대 사회에서 자신과 대립항에 있는 존재에 대해 ‘동료’라고 느끼기는 점차 어려워져만 간다고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런 대사를 쓰셨나요?
A. 본편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언급해주셔서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 그 누구도, 300년 후를 내다볼 순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300년 전의 공기를 마신 적 없을 테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다른 이들을) 비슷한 타이밍에 하나의 세계로 들어온 ‘룸메이트’와도 같은 존재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세계는 닫혀 있습니다. 모처럼 같은 자유의 제약을 느끼고, 같은 운명 아래 놓여 있는 거지요. 그러니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를 동료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서로 죽고 죽이더라도 언젠가는 유구한 시간의 상대성에 짓눌려, 당사자는 세상을 뜨고, 이윽고 역사의 등장인물이 된다. 그런 마음으로 이 대사를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