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올해 초 『극락왕생』 2부의 한 파트를 끝내고 네이버웹툰에서 신작을 론칭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신작에 대해 아주 조금만, 아니 가능하면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예고를 해주신다면요?
고: 어쩌다보니 이 타이밍에 네이버에서 신작을 론칭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그 일에 알맞은 시기가 있는 거 같아요. 작가에게 있어서는 ‘어떤 시기의 나’만이 그릴 수 있는 만화가 있고요. 체력적, 정신적 조건이 마침 딱 괜찮은 타이밍에 맞물리기가 참 힘들잖아요? 모든 게 준비되어 있어도 기회가 오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이번에 흔치 않게 삼위일체가 이루어진 순간이 왔어요. 하지만 동시에 조급해지진 않으려 했죠. 『극락왕생』은 저에게 언제까지고 시간을 두고 계속할 수 있는 편안한 작품이라, 오히려 마음을 느긋하게 가질 수 있었어요.
저의 평생 동안 만화를 그리는 게 (체력적으로) 가능한 시간 안에, 되도록 여러 작품을 독자님들께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고사리박사가 어떤 만화를 그리는 작가인지 저도 이제 막 알아가는 중이에요. 그래서 새로운 작품이 어떤 이야기로 다가갈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극락왕생』과는 다른 기조의 이야기를 해볼까 했는데, 그리다보니 그냥 늘 하던 거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좀 다른 걸 해보려고 했지만 여전히 제가 그린 제 만화스러운,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독자님들이 답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은 『극락왕생』과 비슷합니다.
한 가지는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요! 등장인물이 엄청 많이 나오는 초능력 판타지입니다. 김해인 편집자님이 꾸리신 테마단편집 『여자력』이 문득 생각나네요. 거기서도 편집자님이 ‘초능력’이라는 재미있는 주제를 주셨잖아요. 좋아하는 소재라서 그리면서 즐거웠어요.
Q. 『극락왕생』의 첫 공개가 2018년, 그리고 지금은 2024년입니다. 6년 동안 작가님 안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점, 그리고 여전히 그대로인 점 모두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작가님의 달라진 점은… 작가님이 이제는 만화 터미네이터가 된 것 같아요. 예전엔 엄청나게 즉발적이고 자유롭게 만화를 그린다는 느낌이었는데요. 이제는 보다 책임감과 체계를 갖고 작품을 만들어가시는 것 같아요.
고: ‘만화 터미네이터’… 너무 무서운데 엄청 멋지네요. 그리고 인간성이 별로 안 느껴져요(웃음). 언제 벌써 6년이나 흘렀는지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리고 6년 동안 성실하게 『극락왕생』 연재를 계속한 건 아니니까, 정말로 꾸준히 6년 동안 쉬지 않고 연재를 해내신 ‘진짜’ 장기 연재 작가님들에 비해서는 장기도 뭣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시간이 흘러서 6년 묵은 만화가 된 거랍니다… 『극락왕생』은 느릿느릿 돌고 돌아 천천히 진행중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화와 성장이 있었어요. 돌아서 가는 만큼 경치 구경, 사람 구경을 많이 했어요. 그 과정에서 배운 게 많죠.
일단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완전히 팀 작업 형태로 정착했다는 거예요. 이제 혼자서는 별로 만화를 그리고 싶지 않아요. 육체적으로도 지치고, 오직 저 혼자서 설정해야 하는 세부사항이 많으니까 오히려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질 때가 많아요. (물론 혼자서도 다 완벽하게 해내시는 작가님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진짜’ 만화 터미네이터입니다) 이야기를 쓰는 작가는 자기 세계랑 지나치게 가깝잖아요. 그래서 어떤 디테일은 그 세계 바깥의 제삼자가 더 정확하게 결정해줄 때가 많아요. 그런 눈을 제공해주는 게 팀원들에게 가장 고마운 점이에요. 그리고 팀으로 작업을 하게 되면 책임감과 체계성을 갖출 수밖에 없어요. 팀원들 월급 안 끊기게 매달 줘야 한다는 책임감, 모두가 시간에 맞추어 일을 할 수 있도록 작업할 원고를 만들어 전달하는 체계성. 다 필요하니까 자연히 그렇게 된 거랍니다.
하지만 즉발적이고 자유로운 건 어느 정도 만화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이야기가 나오는 건 저의 머릿속이고, 그 안은 항상 즉흥적이고 장난기도 많아요. 작가니까. 또 저는 기본적으로 변화를 좋아하고 한계에 부딪히는 걸 조금은 재밌어해요(편집자: 그렇게 보이세요^^). 마감은 항상 작가들의 한계를 시험하지 않습니까? 즉발적인 판단과 무한한 자유성 앞에서의 막막한 결정을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내려야 하고요. 그게 만화의 자극과 재미인 것 같습니다.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더 재미있는 거구요. 저 만화 터미네이터 아니죠? 상당히 인간성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