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게 된 계기나, 이를 위한 특별한 과정 등이 있나요?
수: 저는 사실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요. 준비하는 동안 일본 애니메이션을 더 많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하게 일본 애니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사람입니다(웃음). 만화 읽는 걸 좋아하다보니 좋아하는 작품에 ‘공식’이라는 태그가 달리는 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에 메리트를 느끼기도 했고요. (편: 저도 제가 재밌게 본 만화에 ‘공식’적으로 기여하고 관계되는 보람이 큽니다ㅎㅎ) 특별한 과정은 딱히 없고 2년제 전문학교로 유학을 간 뒤 졸업, 취업 활동을 해서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간다는… 외국인으로서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제일 평범한 루트였습니다.
편: 소년만화를 읽다보면 카메라 워크라고 하나요? 어떻게 움직이고, 다음 동작을 취해서, 어디를 때리는지 등등… 그게 애니메이션에서 더 매력적으로 구현될 때 ‘왐마😲’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그 부분만 잘라낸 클립이 온라인상에서 많이 회자도 되고요. 애니메이터는 원작이 되는 만화를 어떤 시선에서 보는지 궁금합니다.
수: 업무로서 작품을 읽어야 할 때가 물론 있습니다. 제 담당 파트를 계속해서 읽어보며 여기엔 움직임이나 표정에 어떤 뉘앙스를 줘서 장면을 살릴 수 있을지, 또 원작자인 만화가가 무얼 표현하고자 하신 건지 고민합니다. 전체적인 지시는 콘테(스토리보드)에 있지만, 디테일은 ‘원화맨’이라고 하는 이들이 제시할 수 있거든요.
조금은 직업병을 갖고 만화를 보게 되었나… 싶어요. 원래도 만화 읽는 건 좋아했는데 최근에는 시장조사도 겸해서 읽고 있습니다. 재밌는 작품이나 엄청 취향인 작품을 읽게 되면 잘 기억해뒀다가 업계에서 애니메이션화 정보가 들려올 때 나도 어떻게 일로 엮여볼 수 없나, 하고 각을 재어보거나 결과물이 잘 나오길 바라며 응원을 하곤 합니다(웃음).
편: 저는 요즘 『사카모토 데이즈』라는 만화를 즐겨 읽는데 ‘이거 애니화 되면 120% 떡상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싶은 액션 장면이 한가득이더라고요.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싶은 만화’, ‘애니메이션으로서도 수작인 만화’ 수민님이 생각하는 그런 만화의 특징이 있다면요?
수 : 『사카모토 데이즈』, 그쵸. 애니로 만들어지면 진짜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읽으면서 액션을 엄청 잘 그리시는 애니메이터분들이 정열적으로 참여하면 이거 굉장해지겠구나 싶었습니다. 전 최근에 『위치 워치』라는 만화를 읽으면서 이건 『스파이×패밀리』 나 『원펀맨』처럼 액션도 개그도 그림도, 모두 잘 살려서 만들면 인기 있겠다 싶었어요. 『히카루가 죽은 여름』 같은 만화도 스산하고 끈적하게 잘 만들면 재밌을 것 같고요.
제가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싶은 만화라고 하면은, 작년이랑 올해에 거의 다 방영을 해버렸어요! 참여하고 싶은 작품은 언제나 너무 많은데 한 회사에 묶여 있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인지라 못 할 때가 많아요. 물론 제가 좋아하는 다른 작품들에 참여하고 있으니 그걸 못 한다고 해서 후회는 없지만요. 요 근래 정말 하고 싶었는데 못 했던 작품 두 개를 말씀드려보자면 『천국대마경』과 『던전밥』입니다… 둘 다 애니메이션도 너무너무 잘 만들어졌죠. (편: わかる、わかる😭… )
그러고 보니 생각난 게 있어요. 만화의 애니메이션화 기획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많은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기획서 등을 준비해 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전 회사에 다니던 당시, 회사 스승께서(그 회사에는 스승과 제자 제도가 있었습니다.) (편: 엄청난데요 그거…?;;) 『스파이×패밀리』의 기획서에 들어갈 그림 자료를 그리고 계신 거예요. 그걸 보고 제가 엄청 흥분해서 이 만화는 절대로 잘될 거라고, 저 본편 제작에 참여하고 싶으니까 열심히 그려주시라고 닦달을 했던 적이 있었네요(웃음).
편: 수민님은 액션이 두드러지는 만화의 애니메이션화 작업을 많이 하신 듯해요. 정지된 만화의 그림을 동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하심에 있어 신경쓰는 게 있으신가요? 이게 애니메이션만의 정체성이다, 매력이다! 싶은 것이요.
수: 액션을 잘 그리고 싶어서 계속 그런 계열 작품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엄청 공부가 되고 있어요. 제가 특별히 동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신경쓰는 건 ‘설득력’과 ‘강약감’입니다. 이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보는 이로 하여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또 원작의 어떤 포즈를 끌어내기 위해선 이런 동작으로 이해시키자… 등, 시청자의 집중을 유지하면서 원작을 돋보이게 하는 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강약감은 좀 사람을 쥐었다 폈다 해야 시청자가 재미를 느낀다고 생각해서, 잘하진 않지만 계속 그 균형을 신경쓰고 있어요. 언젠간 잘하게 되겠죠.
애니메이션만의 정체성은 ‘시간’을 주무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것도 그림으로 어떻게든 ‘설득’해버릴 수 있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편: 『모브사이코 100』의 애니메이션화 소식을 듣고 무척 기쁘면서도 그걸 어떻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개성이 무척 강한 원작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땐 무엇을 신경쓰나요? 하지만 또 ‘원작을 그대로 옮겼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애니메이션엔 어떤 걸 가미해야 할지도요.
수: 그러게요. 원작을 잘 살렸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결국엔 원작이 보여준 것 이상의 해석을 내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독자분들은 원작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간극을 본인만의 아카이브 안에서 더욱 증폭시켜 느끼곤 하는데, 그분들이 그렇게 상상했을 간극도 캐치하면서 그 상상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정확히 제안해야 한다… 그런 느낌이네요. 그리고 그 제안은 얼마나 원작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 등으로 평가가 나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좀 논문 배틀 같은 느낌일지도…?
편: 작업하시면서 있었던 인상 깊은 에피소드 등이 있으신가요?
수: 참여해서 준비하던 작품의 첫 화 방영일에 맞춰 회사에서 다 같이 모여서 본 적이 있었어요. 제가 그린 파트가 나올 때 엄청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갑자기 애플워치에서 심박수가 너무 올라갔다고, 격한 운동중이시냐고 물은 적이 있었네요ㅋㅋㅋ (편:ㅋㅋㅋㅋㅋ)
편: 애니메이션 작업, 쉽지 않죠. 물리적, 육체적으로 정말 어렵고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작업 과정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수: 제가 주로 담당하는 원화 파트로 간단히 설명하자면, 일단 스토리보드를 받고 담당하는 파트를 어떻게 작업해줬으면 하는지, 어떤 느낌의 화면이 되었으면 하는지 각 화 연출자님과 작화 회의를 합니다. 그뒤에 제가 각 컷의 ‘레이아웃’을 제출하는데요, 레이아웃이 뭐냐면 스토리보드를 화면으로 옮기면서 배경이면 배경, 빛의 방향이라든지, 움직임 등을 설계해두는 설계도입니다. 이걸 기준으로 그다음 작업자분들께 어떻게 해달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해요.
레이아웃을 제출하면 연출→감독 순서로 ‘연출을 이런 방향으로 고쳐줬으면 좋겠다’ 하고 수정을 받게 되고, 작화감독→총 작화감독 순서로 컷의 연출 수정을 반영해 ‘이렇게 그려줬으면 한다’라는 비주얼 수정을 받게 됩니다. 이후에는 원화맨이 수정을 반영하며 원화를 작업합니다. 원화는 보통 굿즈 같은 것에서 보신 적이 있으실, 색이 칠해져 있지 않은 선화 그림이라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