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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말 새 만화 브랜드 ‘빗금’이 출범했습니다. 빗금은 무엇이며(최다 질문1―새 만화 출판사인가요?), 왜 시작했는가?(그다음 질문2―왜 따로 하세요?), 앞으로는 무엇을 할 것인가?(그다다음 질문3―무슨 책 내려고요?)…를 이야기해보고자 《만화다반사》 2024년 첫 호에서는 빗금과 빗금의 책들을 소개합니다. 이것은 노골적인 홍보. 그렇지만 독자분들을 충분히 설레게 할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먼저 간단히 소개하자면 빗금은 “주말 동안 자위했어요.(예수와 열두 제자의 최후의 만찬 구도)”라는 대사가 나올 법한 만화들을 내려고 시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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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독자를 본 일이 있는가…” 빗금은 수많은 독자 대신 하이에나 같은 독자를 위한 만화 브랜드입니다. 취향에 맞는 재미를 찾기 위해선 킬리만자로에도 오를 독자들과 함께하며, 마찬가지로 거침없는 발상을 위해 킬리만자로로 향하는 창작자들과 함께하려 합니다. 만화 속 주인공들의 발그레한, 흥분한 얼굴 위에 그려진 빗금들을 닮은 만화로 말입니다. 빗금의 목적과 방향은 순수하게 즐겁고, 날것에 가까우며, 현실에서 보다 먼 세상을 향함과 동시에, 때로는 독자분들의 골을 때려주는 만화에 초점을 두고 싶습니다. 그런 만화가 무슨 만화냐, 라고 물으신다면 책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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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가 문제 있다, 『도덕적 해이』
유쾌한 성인웹툰과 고약한 블랙코미디로 두터운 마니아 독자층을 형성한 안나래, 김달, 스미마 작가의 앤솔러지입니다. 세 작가님들께 청탁한 단편 원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그리고 싶은 것. 그동안 그리고 싶었지만 못 그렸던 것.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것.’ 이 말을 들은 여성만화가들이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라고 일맥상통히 떠올린 것은 조금은 다른 모습이지만, 의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로 세상엔 ‘이런 엄마’도 있다는 것, ‘못생긴 여성’과 ‘잘생긴 남성’의 순애도 (믿기지 않지만) 있다는 것. 빗금이 어떤 책을 앞으로 낼지를 가늠하고 싶다면 『도덕적 해이』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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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찐백합이 나타났다! 『뱀피어즈』
정발 전부터 아는 사람은 아는 백합만화였던 일본만화 『뱀피어즈』. 열네 살 이치카는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어른스러운 분위기의 또래 여자아이를 만납니다. ‘운명의 상대는 네 마음이 가르쳐주는 사람’이라 가르쳐준 할머니의 말처럼, 그 소녀는 이치카의 마음을 한순간에 빼앗아버립니다. 자신을 아리아라고 소개한 소녀의 정체는 흡혈귀. 그리고 이치카에게 피를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어쩌겠어, 빨려야지…) 백합×학원물×흡혈귀×액션을 한 만화에서 만날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GL과 BL에 박차를 가하고 싶은 편집자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타이틀들이 앞으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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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뭔지 알게 된 세 여자의 이야기, 밧탄 작가의 GL만화 『언니의 친구』
빗금에서 선보일 세번째 타이틀은 세 여자의 달콤쌉싸름한 사랑을 그린 GL만화. 중학생인 루리코는 하굣길에 우연히 언니의 친구였던 교코와 만납니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과는 다르게, 교코 언니와의 시간은 향수 냄새, 부드러운 눈빛… 왜 이렇게 달콤한 자극으로 가득한지. 루리코는 문득 궁금해집니다. ‘우리 언니는 왜 교쿄 언니랑 절교한 걸까?’ GL러라면 이제 아시겠죠? 왜냐하면 언니의 친구는… 언니의 전 여친이었으니까!!!
여동생, 언니, 그리고 언니의 전 애인. 세 여자의 망한, 아니 애틋한 사랑 이야기. 봄 기운이 들 때쯤 여러분을 찾아가겠습니다.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작가라는 점도 주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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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중독 한국남자×그를 넷스토킹하는 일본남자의 연애담_ 우리노 기코의 BL만화 『인터넷 러브!』
네일 아티스트 덴마의 아침은 한 청년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훑어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청년의 이름은 은호(국적 한국). 쇼핑 중독에, 먹성도 좋고, 동물을 사랑하는 다정한 남자. 주위에서 말려도 덴마는 ‘댓글&DM 금지, 좋아요는 최대 월 2회’라는 규칙을 세워가면서까지 스토킹을 멈추지 못합니다. 은호의 게시글(6년 만에 여자친구가 생겼습니다♥)과 디엠(“Can we meet?”)에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텐마. 그는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인터넷 러브!』는 『장미라도 쓸 수 있어』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우리노 키코 작가의 첫 BL만화입니다. 우리노 키코만의 담백하고 진중한, 그런데 통통 튀는 매력의 만화가 곧 여러분 곁으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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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질구질 설렘가득, 연골 작가님의 GL만화
일본만화뿐만 아니라 국내작가님과의 작품 또한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집에 놀러와!> <아웃트로> <Barrel> <행복은 빗자루를 타고> 등 GL웹툰으로 유명한 연골 작가님과도 빗금이 함께합니다. 당연히 그것은 흑백만화이며, 주인공은 여자. 그 여자는 사랑을 할 것이고, 사랑하는 대상 역시 같은 여자입니다. 좀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두 여자의 사랑, 제법 구질구질하고 꽤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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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침내, 이윽고 웹툰 <여자친구> 단행본
어떤 부사를 써야 할까요. 드디어? 마침내? 이윽고? 드디어 나옵니다. 마침내 그렇게 됐습니다. 급식을 둘러싼 세력 싸움을 그린 네이버웹툰 <공동급식구역>으로 돌아온 청건 작가님의 데뷔작이자 아직도 가장 많이 출간 문의를 받고 있는 작품 <여자친구>의 단행본이 이윽고 빗금과 함께 출간될 예정입니다. 만화편집자로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 “<여자친구> 단행본은 안 나오나요?”에 이제 답합니다. “<여자친구> 단행본,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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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한 얼굴 위 빗금, 순수한 즐거움, 날것, 먼 세상, 골 때리는 만화… 빗금의 방향과 정체성은 뚜렷하고 원대합니다. 이러한 방향과 정체성이 ‘콘셉트의 내세움’에 그치지 않으려면, 앞으로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연숙(리타) 비평가가 『도덕적 해이』가 내세웠던 ‘빻음’에 대해 살피며 빗금이 앞으로 유수의 원고 및 작가들과 어떻게 함께해야 할지를 진단했습니다.
※『만화다반사』는 소설, 비평, 서평가 등 외부 기고가의 글을 싣고 있습니다. 이는 문학동네 만화편집부의 공식적 의견 및 정치적 입장과는 무방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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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빻음’ 이상의 이유 written by 이연숙(리타)
『도덕적 해이』에 대한 길지 않은 분량의 글을 청탁받고 나는 적지 않은 부담감에 시달렸는데 가장 큰 이유는 우선 『도덕적 해이』라는 앤솔러지에 참여한 세 명의 작가인 안나래, 김달, 스미마가 충분한 지면을 할애해 각각 따로 다룰 필요가 있는 ‘문제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어 왔다는 사실에 있다. 나로서는 한꺼번에 다루기 벅찬 역량의 작가들이고 압축해서 설명한들 분명한 한계가 있으므로 통상 이런 경우에는 궁여지책으로 기획이나 주제에 대한 나름의 ‘썰’을 풀게 된다(그리고 이미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도덕적 해이』를 통해 이제 막 세 작가를 알게 된 독자도 있을 테고(그렇다면 축하한다) 나도 그런 이들을 고려해 이 앤솔러지가 얼마나 대담하게 그간 ‘억압’되어 있던 ‘여성’들의 ‘빻은’ 욕망을 ‘폭로’하고 있는지를 가볍게 소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작품들은 ‘빻았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방식의 독해는 그간 ‘문학동네’에서 출판된 몇몇 국내 ‘여성’ 만화가들의 앤솔러지가 기획되고 홍보되어 온 기조(‘여성 서사이기에 소중하다’?)와도 그리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더욱이 재미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문학동네’의 새로운 출판만화 브랜드인 ‘빗금’은 『도덕적 해이』를 “빻았지만 재밌는, 빻아서 재밌는”이라고 소개함으로써 이 책의 ‘재미’가 그것의 ‘빻음’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도덕적 해이』를 이루는 소재와 주제는 표면적으로 자극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들을 ‘빻았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또다른 문제다. 15세 이상이라는 권장 연령 특성상 ‘충분히’ 빻기도 어려웠을 테지만 무엇보다 내게는 각각의 작품들이 ‘빻음’ 자체를 지향하기보다 도대체 무엇이 (편집자의 주문이기도 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가를 질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에 수록된 단편들을 한번 살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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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래는 「레퀴엠」에서 자살한 엄마의 애인과 기묘한 우정(?)을 쌓게 되는 딸을 화자로 내세운다. 결말에 이르러 이야기가 끝까지 품고 있던 비밀은(내가 기대한 것처럼 엄마의 애인과 딸의 에로틱한 관계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도 승화되기 어려운 엄마의 세상에 대한, 딸에 대한,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밝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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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의 「수학자의 폰즈상」은 ‘유아 살해’를 처벌하지 않는 문명국가라는 세계 속 한 수학자 부부의 '임출육' 경험을 다룬다. 작품은 ‘여성’으로부터 ‘여성’을 이루는 본질(여기서는 모성)을 제거하고 나면 과연 성차란 무엇이 될 수 있을지를 질문한다. 한편 「어부와 인어」는 우발적 범죄를 저질러 유배된 남성과 인어(추정)의 짧은 만남을 그린다. 여기서는 여성(성)의 잔인함과 남성(성)의 어리석음이 대비되며 성차는 다시금 ‘종’의 차원으로 귀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건설 현장을 배경으로 한 스미마의 「구원은 당신의 손에서」는 어리숙한 미남과 전략적인 추녀의 연애라는 판타지를 리얼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추녀와 미남의 연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그리고 폐쇄적 종교 공동체에서 막 탈출한 미남의 낮은 사회적 지능과 그에 대한 추녀의 인내심 부족은 두 사람의 관계에 갈등을 일으키지만, 결국 이들은 ‘진정한 사랑’으로 다시금 결합한다. 이 과정에서 시험에 드는 것은 기실 독자들이다. 그림체를 통해 확연히 미형과 추형이 구분되는 두 인물 간의 ‘순애’는 역설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외설이 된다.
순전히 ‘빻은’, 빻기만 한 작품을 기대한 독자들을 슬쩍 배신하는 방식으로 세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무엇을 ‘빻았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전제 자체를 겨냥한다. 그것은 바로 도덕이다. 세 작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덕’과 관계 맺고 있는데, ‘도덕’이란 안나래에게 이상적으로 존재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고(“어떻게 죽기 전에 이딴 소리만 하다가 죽어?!”), 김달에게 ‘인간성’을 이루는 조건이 무엇으로 규정되느냐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고(“문명국가에서는 아이를 살해한 엄마를 처벌하지 않습니다.”), 스미마에게 상대와 나의 진정한 만남을 위해 돌파해야 할 시련이다(“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어요. 성관계는 죄가 아니었음을. 구원이었음을…”). 세 작가의 이런 관점 차이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사적 취향을 의미하는 ‘빻음’이 언제나 공적 차원으로 확대될 계기를 품고 있음을 드러낸다. 어쩌면 ‘빻음’이 이미 ‘도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도덕적 해이』를 진정 ‘문제적으로’(그러니까 ‘정치적으로’)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면 더욱이 (홍보를 위해 동원되었어야 할 표현이겠지만) “은밀히” 숨겨 봐야 할 이유는 없는 셈이다. “은밀히” 숨겨 봐야 할 만화는 어차피 온라인상에 차고 넘친다.
물론 “빻았지만 재밌는, 빻아서 재밌는” 국내 만화가들의 작품을 출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을 테고, 포스타입과 같은 개인 플랫폼이 요구하는 복잡한 성인 인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이들의 작품을 단행본 형태로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은 여러 독자들에게 또한 큰 기쁨일 것이다. 그러니까 대형 출판사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온라인 선공개 없이 출판하게 될 때 기획에 있어 더더욱 정교해질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은 그냥 내 꼬인 성격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안나래, 김달, 스미마는 대체 불가능한 작가들이고, 이들이 대체 불가능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들이 모여서 ‘좋다’는 것, 그 이상의 이유가 『도덕적 해이』에는 필요하다.
이연숙(리타)
시각예술 비평가. 2021 《SeMA-하나 평론상》을 수상, 퀴어 부정성과 시각 문화를 주제로 한 책 〈진격하는 저급들〉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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