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의 작화를 담당하셨던 장성락 작가님의 타계 소식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과도한 업무 강도로 유산에 이르렀다고 털어놓은 작가님도 계셨고요. 작년도 웹툰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작가는 평균 일주일에 5.9일, 하루 10.5시간을 일한다고 합니다. (직장인으로서 그렇게 일한다고 생각하면 죽고 싶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일을 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평균 50컷을 요구하던 초창기 웹툰업계에 비해, 지금은 풀컬러 70컷이 업계의 표준이 되었고 80컷 이상, 100컷을 그릴 때도 있다고 합니다. 종종 작가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60컷도 겨우 그렸는데 차기작은 엄두가 안 난다’ ‘채색을 생략하고 싶은데 흑백웹툰이 과연 가능할까’하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양질의 작품이 고강도의 노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고, 설령 고강도의 노동을 통해 양질의 작품이 나온다고 해도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한 작품만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다음 작품도 보고 싶고, 그다음 작품도 보고 싶습니다. 다들 건강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노동 환경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중구 명동에 위치한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의 만화잡지 창간호를 볼 수 있는 전시를 하고 있어요. 소식을 듣고 바로 가보았는데, 규모가 큰 전시는 아니지만 비치된 아이패드로 창간호 본문을 PDF로 모두 볼 수 있어서 아주 밀도 높은 전시였답니다.

거의 모든 잡지의 창간호에서 찾을 수 있었던 강경옥, 신일숙, 황미나, 원수연 등 내로라하는 선생님들의 이름을 보며 오래전부터 한국만화는 여성작가와 여성작가가 그린 순정만화가 주도해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당대 힙스터 만화 잡지 『나인』의 창간호가 인상 깊었어요. 유시진 작가님의 『신명기』 첫 화가 창간호를 장식했는데, 양면 페이지를 풀컷으로 활용한 연출이 기가 막혔답니다… 함께 실린 유시진 작가님의 인터뷰도 아주 재밌었구요.

야만의 인터뷰. 『만화다반사』 인터뷰도 아직 갈 길이 멀었습니다… 전시는 연장되어 오는 18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사이 관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번 주말은 명동으로 가보시면 어떠신가요? 겸사겸사 애니메이션센터에 비치된 수많은 만화책들도 무료로 보고 오시지요📖

👀편집자가 읽어본 웹툰_ 오! 나의 퀸 (영춘 저, 카카오웹툰)

얼마 전 조던 필 감독의 영화 <놉>을 보고 ‘이렇게 PC한데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구나’ 싶어 재밌게 본 기억이 나요. 그리고 그 ‘이게 되네’의 작품을 떠올리던 중 웹툰 <오! 나의 퀸>도 떠올랐어요.

<오! 나의 퀸>의 주인공 김솔은 어린 시절부터 앞서가는 패션 센스를 지녔지만, 동네 남자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기 일쑤. 그런 솔에게 사람들이 놀려도 신경쓸 것 없으며, 그 개성은 멋있는 거라고 유일하게 응원해주던 동네 오빠 재훈은 잊지 못할 첫사랑입니다. 시간이 흘러 서울의 유명 패션학교에서 공부하게 된 솔은 우연한 계기로 드랙쇼를 구경하게 되는데요. 쇼에서 남다른 끼를 보여준 릴리를 보고 자신의 뮤즈를 찾은 듯 가슴이 뜁니다. 그런데 릴리라는 이 남자, 왠지 어릴 때 본 것 같은데…?  

드랙 퍼포먼스, 게이라는 약간은 남다른 소재가 솔과 릴리의 성장, 사랑 이야기와 어우러지며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독특한 소재만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오해를 하고 솔직하지 못하다가도 결국은 진심을 전하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에 소재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정말정말 흥미진진한 성장담이 전개되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솔의 성공과 릴리의 사랑을 응원하게 된답니다. 

맨 처음 독립 연재 시절의 『기억의 해부학』을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다음 화가 올라오기까지가 제법 길었는데도 매일매일 다음 화가 올라올 때까지 이전 화를 재독했습니다. ‘기억의 도돌이표’라는 문구처럼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이 만화의 도입부 몰입감은 제가 본 그 어떤 웹툰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엄마가 되지 못한 건가? 아니면 인간이 되지 못한 건가.’  같은 장면이지만 회를 거듭하며 달라지는 분위기와 밝혀지는 감정과 사연들, 그리고 무엇보다 만화인데도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정말 물씬 들었습니다.

제가 정말 자신 있게 말하고 싶은 건 『기억의 해부학』은 현재 출판되어 있는 웹툰 단행본 중에 가장 출판만화 문법과 연출에 가깝게 편집된 책이라는 것입니다. 출판원고가 오리지널이었나 싶을 만큼 자연스럽게 편집되었고, 그 과정에서 웹툰이 주었던 몰입감은 더욱 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혹시 눈치채실 분이 있으실까 싶은데, 이번 책 소개글을 쓰면서 한 번도 ‘재미있다’라는 말을 쓰지 않았어요😯 너무너무 흥미진진하고 숨막히는 이야기의 책인데, 왠지 그 재미를 고작 ‘재미있다’는 한마디 말로 단순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마침내 여름의 끝, 혹은 벌써 가을의 시작. 서늘한 밤에 읽기 좋은 『기억의 해부학』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